서울특별시보다 면적이 2배가 더 크다고 한다. 하지만 인구는 고작 3만6천여 명 정도. 워낙 넓은 면적을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지키다 보니, 가장 내세울만한 가치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란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고장 봉화, 자연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봉화로의 여행을 시작하자.

▲가을 단풍이 빼어난 청량산
▲가을 단풍이 빼어난 청량산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여를 갔을까. 지난번 영주 여행 때 들렀던 그 곳, 인삼의 고장 풍기가 나타난다. 지금은 오히려 사과를 말하는 것이 더 편할지 모르겠다. 도로 주변이 온통 사과를 팔기 위한 노점으로 가득 차 있다. 그곳을 지나쳐 달려야 영주와 맞붙은 봉화가 나온다. 봉화군은 태백산 준령 남쪽자락에 위치하며 천혜의 자연자원과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경북의 최북단에 위치하며 빼어난 청정 산악지형을 이용한 세계적인 산간 휴양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봉화가 나를 부른다.

한참을 달리니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일행을 이끄는 봉화군 박남주(미래전략과 혁신전략팀) 팀장이 봉화군의 첫 관문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이 먹거리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솔봉이 식당(054-673-1090)을 찾았다. 여행사 대표와 기자단 등 대규모 여행단을 맞이하는 엄청난 상황이지만 일일이 자연산 송이로 밥을 지어 외지인들에게 대접을 아끼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송이를 이용한 돌솥밥, 전골, 송이육회, 송이불고기, 송이구이 등이 제철 제 맛을 자랑하고 있다.

허기진 배를 채우자마자 일행이 발을 옮긴 곳은 봉화의 ‘보물찾기’였다. 여기서부터는 봉화군 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임형만 씨가 맡았다. 그는 영주에 살면서도 봉화가 좋아 매주 관광객에게 봉화를 알리는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알려준 봉화식 인사는 “안녕하시이~여”와 “아직 자셔는겨”다. 다소 생소한 사투리지만 이곳에서는 일상적으로 나누는 인사법이다. 하나는 “안녕 하세요”이고, 다른 하나는 “아침 드셨느냐”에 대한 인사말이란다. 봉화를 찾을 때 이 말을 명심하면 다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으니 외워두도록 하자. 

이 도령의 본명은 ‘성이성’
봉화 이야기 중 빼먹지 않는 얘기가 있으니 그 것이 바로 ‘춘향전’의 원조 논란이다. 다들 춘향이가 남원에 산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도령의 아버지 남원부사는 누구이며, 그의 고향에 대해서는 들어 본 바가 없을 것이다. 이런 궁금증이 봉화에 오면 한 방에 해결된다. 

▲이몽룡 생가로 알려진 성이성 선생의 고택.
▲이몽룡 생가로 알려진 성이성 선생의 고택.
국도 36호선에서 지방도 915호 물야방면 도로를 가다보면 도로변에 계서당 안내 표지판이 다. 이곳 계서당 주인은 성이성 선생이다. 숙종 21년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최근 알려진 인물이다. 계서당 즉, 성이성은 성안의의 아들로 그가 과거에 장원 급제해 어사로 부임할 당시 사용했던 어사화 등 유물과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란 주제로 실제 인물이 성이성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 이몽룡은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嘉肴)는 만서고(萬姓膏)요, 촉루낙시(燭淚落詩)는 민루낙(民淚落),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라” 한 뒤 암행어사 출두를 소리치며 당일 파출수령 6인과 그밖의 6인에 대한 서계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는 성이성이 쓴 시로 4대 후손 성섭이 지은 ‘교와문고 3권’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이몽룡과 흡사한 성이성 선생의 행적내용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즉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은 이몽룡이고, 이 도령의 실제 이름은 성이성이며, 여주인공인 성춘향은 성이 이 씨라는 사실을 숨겼는데 이는 신분에 따라 제약을 받는 사회임으로 작자가 임의로 바꿔 쓴 것이라고 계서당을 지키고 있는 13대 손 성기호 씨가 전한다. 앞으로 춘향전의 발자취를 알기 위해는 남원과 봉화를 번갈아 오가야 할지 모른다. 

붉은 빛 자태가 아름다운 ‘미인송’

▲봉화의 자랑 미인송
▲봉화의 자랑 미인송
이 도령의 실체를 확인했다면 영주의 부석사와 이미지 가 비슷하지만 약간 거치면서도 내륙의 정취를 품고 있는 축서사로 향한다. 물야면 개단리 문수산 8부 능선에 위치한 사찰로 영주 부석사보다 3년 앞선 673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6.25 전쟁 때 지금의 대웅전과 오사채를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어 지금은 현대적 이미지만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에는 보물 제995호인 석불좌상부광배가 있으며 석등과 삼층석탑이 아름답다. 하지만 축서사를 찾는 이들은 절의 의미보다 절이 간직한 문수산의 정취와 그 뒤로 펼쳐지는 눈 맛에 잠시 세상 근심을 잊곤 한다.

눈이 시원해졌다면 이제는 몸과 마음이 시원해질 차례다. 주실령 740미터 고개 오전 약수탕과 두내 약수탕을 지나 서벽리 금강송군락지에 들어섰다. 금강소나무는 일명 춘양목으로 알려졌으며, 문화재청에서 경복궁 등 주요 문화재용으로 소요되는 목재의 원활한 공급을 위하여  봉화군 춘양면 일대 소나무 집단생육지를 문화재용 목재생산림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을 정도다.

현재 1천487그루 정도가 일일이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이중 앙 팔을 벌려도 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2미터 나이는 80년이나 된 왕 금강소나무(일렬번호 188)와 고운 붉은 빛 자태가 아름다워 ‘미인송’으로 불리는 적송(일렬번호 482)을 찾는 묘미는 삼림욕과 더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특별한 이벤트다. 그리고 춘양에 대한 정보 하나 더. 춘양은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억지춘양’의 어원이 생긴 동네다. 자유당 때 이곳까지 억지로 철도를 돌려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안성이 아닌 봉화의 유기공방
일정 둘째 날. 채 걷히지 않은 아침 안개 속으로 서서히 만산고택이 나타난다. 만산은 현재 이곳을 지키고 있는 강백기 옹의 고조부 호로 대원군 이하응이 편액을 하사했으며, 만산은 장원급제 후 성균관 대사성, 대사관 등을 지낸 인물로 옛 선조의 삶과 주거 형태를 그대로 안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삶을 엿봤으면 생활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유기공방을 찾아가자. 봉화의 방짜 유기는 구리(78%)와 주석(22%)을 합금하여 만들어 은은한 생상과 품위가 돋보이는 500년 역사를 가진 우리의 놋그릇이다. 봉화군 봉화읍 삼계리에는 5대에 걸쳐 가업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유기공방이 있으며, 1994년 9월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2호 유기장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봉화읍 삼계리에 위치한 유기공방
▲봉화읍 삼계리에 위치한 유기공방
더불어 500여 년 전부터 안동 권 씨 종가에서 혼례, 회갑, 제례용으로 사용되어 오던 유과, 입과, 잔과 등의 한과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닭실마을도 봉화여행에서 꼭 한번 들러야 할 곳이다. 닭실마을 바로 옆에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을 지낸 충재 권벌 선생의 유적지가 있다. 선생이 지은 청암정과 석천정이 보존되어 있으며 울창한 송림과 계곡의 아름다움이 수석으로 싸여 경관이 수려하다. 충재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충재박물관도 있다. 또 하나의 먹거리로 봉성면 소재의 봉성돼지숯불구이도 토속음식으로 각광을 받는다. 숯불에 솔가지를 넣어 독특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어 매년 8월 중순 축제까지 열 정도다. 

하늘다리 따라 그린 청량산의 정취
이제부터 봉화 여행의 백미를 즐길 차례다. 해발 8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하는 길이 90미터, 높이 70미터의 현수교량인 하늘다리, 신라 문무왕 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 금탑봉을 비롯해 12개 봉우리, 8개의 동굴이 만들어진 청량산.

이곳은 퇴계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청량산을 가기위해서는 낙동강이 외청량의 기암괴석을 끼고 유유히 흐르며 병자호란 때 기인 임장군이 강을 건너뛰면서 바위를 잡고 턱걸이를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턱걸바위를 만난다.

▲산꾼의 집 초막
▲산꾼의 집 초막
이곳을 지나 창량산 입구에 들어서면 가히 장관이 펼쳐진다. 원효대사가 수도를 위해 머물렀던 응전전 뒤 절벽위에 둥근 바위하나가 바람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간신히 얹힌 듯하여 동풍석이라 불리는 기암괴석은 청량산 나들이의 절정이다. 가픈 숨을 쉬면서 청량사로 향하다 보면 약간은 엉뚱한 청량산의 명물이 나타난다.

그 곳은 바로 대한민국 달마화 명장 제1호의 집이라 불리우는 청량산 달마원이다. 이곳은 지난 16년 동안 청량산을 지켜온 청량산보다 더 유명한 ‘산꾼의 집’ 초막 이대실 선생이 살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아무나 “약차 한 잔 들고 쉬었다 가시구려”하는 주인장의 풍취를 느끼는 쉼터다. 이도 서러워 이제는 ‘약차를 그냥 먹고 가는 집’이란 간판도 내걸었다. 여기를 지나야 청량사가 나온다.

도시 청량산을 내려오는 길. 찻집 안심당이 내리막길 산 손님을 유혹하고, 때늦은 가을빛이 새롭기만 하다. 누구나 연인이 되고, 산의 정취에 빠져 시인이 될 수 있을 정도다. 다시 발길을 재촉한 일행은 봉화의 인연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가기 위한 버스에 몸을 맡긴다.

▲봉화는 원래 사과로 유명하다.
▲봉화는 원래 사과로 유명하다.


먹거리
봉화 송이 돌솥 한정식- 한약우 사골국물을 넣고 봉화송이, 인삼, 밤, 대추 등을 돌솥에 지어내어 봉화에서 자생하는 산나물 등 20여 가지와 함께 상차림한 한정식이다. 영양도 풍부하고 그윽한 송이 향 을 만끽할 수 있다. 송이전골, 송이불고기도 맛볼 수 있다. 

한약약수닭백숙-황기, 구기자, 당귀, 인삼 등 한약재를 넣고 약수에 고아 만든 닭백숙으로 입맛을 돋우고 양기를 보충하는 보양식으로 유명하다.

▲봉성숯불돼지구이
▲봉성숯불돼지구이
봉성돼지숯불구이-암퇘지고기를 도톰하게 썰어서 소나무 숯불에 구워내어 솔향기가 스며들어 담백하고 쫄깃하다. 한약재로 쓰이는 당귀 잎과 함께 싸먹으면 뒷맛까지 향기롭고 개운하다.

쉴곳
명산랜드-한실 26개실, 침대 25개실 등 총 51개 객실을 운영하고 있다. 음식점 휴게가든을 직접 운영하고 있어 아침밥이 가능하며, 인근에는 민물고기 잡기와 썰매타기와 레프팅을 즐기는 계곡이 있다. 054-674-0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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