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뜨개질과 쿠키 굽기’라고 당당히 말하는 한 미국인 남편이 있다. 그는 한국인 아내와 살면서 장모로부터 뜨개질을 배워 틈나는 대로 코바늘 삼매경에 빠진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위해 유기농 재료를 직접 사다가 쿠키를 만든다. 이런 그의 직업은 성균관대학교 어학원 교수. 덕분에 고소한 향이 밖으로까지 퍼지며 동네 주민들로부터 한껏 부러움을 사는가 하면, 이웃 남편들의 취미 활동에도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국적과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받는 사위가 된 Mr. Hartman

 
 
미국인 Ray Thomas Hartman(이하 하트만 씨)은 서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어느 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와이프 안선영 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안 씨와는 언어가 잘 통해 쉽게 친해졌다. 이후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부쩍 가까워진 두 사람은 마침내 2006년 결혼에 골인하여, 딸(나연. 6)과 아들(준영. 3) 두 자녀를 두고 있다.

평소에도 아시아에 관심이 많았다는 하트만 씨는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하고, 결혼 전 얼마간 중국에 근무했으나 한국이 그리워서 다시 돌아왔다. 그에게 한국은 ‘조용하고 예절 바르며 질서 잘 지키는 나라’였던 것. 현재 그는 성균관대학교 어학원에서 영어쓰기와 영어발표 강의를 하고 있다.

하트만 씨는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인이 많은 곳이라서 일찌감치 한국 음식에 매료됐다. 여섯 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할 때에도 김치, 두루치기 등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장모님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분당으로 이사 온 지는 2년째. 지금 살고 있는 판교를 비롯해 날로 발전하는 분당을 보면서 “이보다 살기 좋은 동네가 없다”며 부부가 모두 분당 예찬론자가 되어 버렸다.

 40년 전에 장모가 뜨개질한 옷에 반해 코바늘 들고 장모 뒤만 졸졸

 
 
작년 여름, 하트만 씨는 장인어른이 젊은 시절 즐겨 입었다는 40년 넘은 손뜨개 티셔츠를 선물로 받고 큰 감동과 동시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티셔츠는 안 씨의 친정 엄마 즉 하트만 씨의 장모가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 직접 뜨개질한 옷이었던 것. 지금 봐도 새 옷 같은 모습에 하트만 씨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하트만 씨는 넉살 좋게 “어머니, 저 좀 가르쳐 주세요”라며 코바늘을 들고 장모님을 졸졸 따라다녔다. 그렇게 코 잡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스스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연구한 끝에 첫 작품으로 딸의 모자와 목도리를 완성했다. 그 밖에도 집안 곳곳에 소소한 장식품이나 실용적인 아이템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에는 티메이커 싸개를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조각보처럼 정사각형의 뜨개질 조각을 100개 목표로 만들고 있는데, 완성되면 소파덮개나 이불보로 쓸 거라며 연신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안 씨도 이불이나 아이들 옷을 직접 만드는 등 퀼트에 재미를 붙이고 있어서 함께 동대문으로 실이나 천을 사러 가거나 색 배합을 논의하기도 한다.

반면, 출퇴근길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 안에서까지 뜨개질하는 남편에게 짐짓 못마땅한 듯 자제를 부탁하는 안 씨, “저 남자한테 저런 재주가 다 있었나? 라며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괴짜 같기도 한데,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가정적인 남편이 자랑스럽다”며 남편 자랑을 늘어놓는다.

 

자녀 교육은 엄격하게, 자녀 사랑은 직접 만든 아빠표 웰빙 쿠키로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부부가 잘 맞는 편인데, 예의범절이나 공공장소에서의 규칙 등 철저한 기준을 세워 엄격하게 교육을 시킨다는 하트만 씨. 그렇지만 아이들을 위해 직접 간식을 만들어주는 모습에서는 인자한 아빠의 사랑이 넘친다.

미국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만들어 먹던 쿠킹 실력을 내세워 하트만 씨는 가족들을 위해 시간 나는 대로 케이크나 쿠키를 직접 굽는다. 아이들은 유기농 재료로 건강한 간식을 만들어주는 아빠표 쿠키를 유난히 좋아한다. 하트만 씨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목표는 바로 ‘대바늘’이다. 대바늘 뜨개질을 배워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가방 등 좀 더 많은 작품을 만들 계획이라고. 또 이와 함께 ‘하우스맥주 만들기’도 야심차게 준비 중이다.

뜨개질하는 남편, 쿠키 굽는 아빠 하트만 씨의 해피하우스 판교 봇들마을. 곳곳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코 중간에 안경을 걸친 채, 그 큰 손으로 조그마한 코바늘을 움직이는 남편과, 곁에서 한창 퀼트에 집중하고 있는 아내. 이 부부의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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