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들.
▲분당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들.
▲오미주 단장
▲오미주 단장
일본 '우토로마을' 돕기 사업을 국내 최초 시작했던 분당청소년오케스트라 초대 지휘자 故 김용교(작고 2005년)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분당청소년오케스트라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역사교육단을 발족, 나고야 오카자키시와 교토 우치시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19일 저녁7시 분당구청대회의실에서는  단원 60여 명을 대상으로 역사교육을 실시하고, '우토로마을 역사기념관 건립' 기금을 마련해 오는 24일 일본을 방문해 나고야 오카자키시 소재 대학에서 초청연주회를 갖고, 이어 교토 우치시 소재 우토로마을을 찾아 기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를 마련한 분당청소년오케스트라 오미주 단장은 "일본 대학생들과의 상호 연주교류를 통해  세계화시대에 알맞는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선도하며, 우토로 마을 방문을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 시키고 '청소년문화사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우토로 마을은 6천평(2만1천평방미터) 가량에 1천300여명의 조선인이 살았던 우토로는 처음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재일 조선인 마을로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 정부에 의해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가 한바(노동자가 집단으로 합숙하던 가건물)를 만들어 생활하면서부터 형성된 마을이다. 

▲김형석 지휘자와 연주 봉사를 나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단원들.
▲김형석 지휘자와 연주 봉사를 나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단원들.
조국을 떠나 우토로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다양하다. 강제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왔다가 우토로로 흘러 들어온 사람, 일본군 징용을 피할 수 있다고 해서 노무를 선택한 사람,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거짓 선전으로 이주해 온 사람 등 요컨대 총칼 앞에서 강제 징용 당하거나, 논밭을 빼앗기는 등 생계수단을 빼앗겨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도일해 온 사람들이었다.  
 
이후 비행장 건설은 중단되었고, 이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였다. 많은 조선인들이 해방의 기쁨을 안고 일본을 빠져나갔지만, 조국에 친척도 집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거나, 배삯을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았다. 이들은 여건이 허락하는 때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품고, 일본 정부와 기업의 전후보상은 커녕 최소한의 인도적인 배려도 없이 방치된 삶을 살아야 했다. 

현재는 3분의 1 정도의 토지를 한국정부에서 국고로 지원해 매입해 마을을 새로 만들 계획 중에 있으며,  아픈 역사 속에 잊혀져갈 우투로마을에 아유슈비츠 기념관처럼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사기념관 건립'을 추진중에있다.  분당 청소년 오케스트라 초대 지휘자였던  故 김용교 선생은 우토로마을 돕기 운동을 한국에서 최초로 시작한 인연을 맺고 있으며, 단원들의 일본방문 역시 이들이 모은 역사기념관 건립기금을 전달하는 자리로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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