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의 생가를 찾으면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공감하게 된다.  향수와 서정적인 정서가 가득 배인 곡들은 그가 자란 환경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감정이었구나 하게 된다.  이심전심의 마음이 더해져 포근하게 다가온다. 

어릴적 흔히 볼 수 있었던 초가집들이 있는 산골의 작은 마을,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의 감나무 한그루,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노래를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내/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가을 끝자락이라 꽃속은 아니지만 억새와 감나무가 있는 풍경은 마음속 고향집을 떠올리게 해준다.

 
 
좁은 길을 따라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도 모른채 가다보니 나오는 초가집 하나, 그 앞에 홍난파 선생이 태어난 옛터라는 표지석이 나타난다.

 
 

화성시 활초동에 있는 홍난파 생가는 초가지붕에 벽을 흙으로 바른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초가집은 싸리 울타리에 둘러 쌓여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홍난파 선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액자들이 몇 개 걸려있는데, 바이올린이 유독 눈길을 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길고 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초가집을 보자 풍경이 그려진다.

집 한바퀴를 다 돌아도 금방이다.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을 가족들, 가을밤이면 고구마를 삶아 먹고, 작은 창으로 하늘의 별을 보았을 것만 같다. 낮은 문, 작은 창이 신기해 자꾸만 들여다 본다. 

 
 
 
 
 
 
 
 
홍난파 선생은 1898년 경기도 남양면 활초리 283번지 홍순의 2남2녀중2남으로 태어났다.  1910년 황성 기독교 청년회(YMCA) 중학부에 입학한 선생께서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으며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 후 이화 여자 전문학교에서 강사로 할동하기도 하였다.

대표작으로 봉선화, 고향의 봄,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낮에 나온 반달, 봄처녀, 퐁당퐁당, 개구리 등이 있다.

■화성시 활초리 283-1 홍난파길
■주변볼거리 : 남양성모성지,  안산갈대습지공원, 제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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